2000년대 초중반, 스마트폰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음악을 듣기 위해선 ‘직접 저장’하거나 ‘직접 재생’해야 했다. 그 시절의 우리에게 가장 익숙했던 건 바로 CD 굽기였다. 오늘은 좋아하는 곡 CD에 구워 친구 주던 시절 아이리버, 코원 같은 브랜드들 추억을 회상해보자
💻 좋아하는 노래로 가득 채운 ‘나만의 CD’
PC방이나 집의 데스크탑 컴퓨터 앞에 앉아, 좋아하는 곡들을 모아 한 장의 CD에 정성껏 담는 작업은 마치 작은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 같았다.
MP3 파일을 하나하나 모으는 일도 쉬운 건 아니었다. 당시에는 멜론, 벅스, 도시락 같은 음악 사이트에서 유료로 다운로드받거나, 친구에게 외장 하드/USB로 파일을 받아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뮤즈', '소리바다', '프루나' 같은 프로그램도 많이 사용됐지만, 속도도 느리고 파일명도 제멋대로라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CD를 구울 땐 보통 ‘Nero’ 같은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용량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보통 15~20곡 정도를 넣을 수 있었고, 플레이어 호환성을 위해 CD-R 형식을 선택해야 했다. 곡 순서도 중요했다. 감성적으로 시작해 점점 고조되다가 마지막엔 잔잔한 곡으로 마무리하는 식의 ‘플레이리스트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CD 겉면에는 제목도 적고, 노래 리스트를 직접 써 넣거나 프린트해서 케이스 안에 끼워 넣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스티커를 붙이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CD를 선물하는 건 굉장히 특별한 표현이었다.
그건 단순한 노래 모음집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만든 하나의 감정 앨범이었다.
🎧 주머니 속 나만의 콘서트, MP3 플레이어
음악 감상이 ‘일상’이 되기 시작한 시기는 MP3 플레이어의 등장과 맞물려 있었다.
그 전에는 CDP(휴대용 CD 플레이어)나 카세트 플레이어가 일반적이었지만, 부피가 크고 배터리 소모도 심해서 불편했다. MP3 플레이어는 작고 가벼우며 곡 전환도 빠르고, 충전해서 오래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 같은 존재였다.
그 당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바로 아이리버(IRIVER), 코원(COWON), 그리고 삼성 YEPP 시리즈였다.
아이리버는 특히 감성적인 디자인과 화면 UI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코원은 음질 면에서 두터운 팬층을 자랑했다. YEPP은 ‘Young Energetic Personal Passion’을 줄인 이름답게 젊은 감성의 광고로 기억되는 브랜드였다.
MP3를 샀다는 건 단순한 기기 구매가 아니라, 음악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용량은 보통 128MB, 256MB, 많아야 1GB 정도였기 때문에 어떤 노래를 담을지 늘 고민해야 했다. 나중엔 ‘플래시메모리’를 사서 용량을 업그레이드하는 사람도 있었다.
배터리는 대부분 AAA건전지를 사용했는데, 건전지값이 부담돼 충전지나 USB 충전식 제품으로 바꾸는 일도 잦았다.
MP3 플레이어는 단순한 재생기기를 넘어서 감정의 파트너였다. 등굣길, 창가 자리에서 듣는 발라드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을 줬고, 시험 전엔 좋아하는 락 음악으로 긴장을 풀었다.
음악 하나에 따라 그날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던 시절. 우리는 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 작은 기기 속 세상에 빠져 있었다.
🔄 음악과 추억을 주고받던 아날로그 감성
CD를 굽고 MP3에 노래를 넣는 일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건 내 기분과 취향,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하나하나 담아내는 일이었다.
친구끼리 “너 요즘 뭐 들어?”, “이거 완전 너 스타일일 듯” 하면서 CD를 주고받거나, MP3 파일을 복사해주는 건 마치 감정을 나누는 의식 같았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CD를 선물할 때는 정말 모든 걸 쏟아부었다.
표지 디자인, 곡 순서, 메시지까지. 어떤 노래를 넣어야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할까’ 혹은 ‘이 노래를 듣고 내 마음을 눈치챌까’를 고민하며 만든 그 CD는, 말보다 더 진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이따금 받는 사람이 “너 그때 준 CD 아직 갖고 있어”라고 말해줄 때, 그것만으로도 진심이 전달된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스트리밍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 세계 음악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그 시절 우리가 했던 ‘선곡’과 ‘선물’은 지금보다 더 진심이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선별하고 정성 들여 담은 음악 리스트는 단순한 트랙 리스트가 아니라 마음의 편지였던 셈이다.
🧡 음악으로 기억되는 그 시절의 나
MP3에 노래를 담던 시간, CD에 좋아하는 곡들을 모으던 노력.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떤 곡을 들으면 그 시절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듣고 다닌 게 아니라, 음악으로 추억을 기록하고 있었던 거다.
혹시라도 지금 서랍 어딘가에 그 시절 쓰던 MP3 플레이어나 직접 만든 CD가 남아 있다면, 한번 꺼내서 다시 들어보자.
당시의 내가 어떤 감정을 담아 어떤 음악을 골랐는지, 지금의 나와 비교해보는 것도 꽤 멋진 감정 여행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 스트리밍 시대지만…
CD 한 장, MP3 하나, 그 작은 조각들이 지금도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